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다. 당시 독일은 서쪽으로 프랑스, 영국 및 미국 연합군과 맞서 싸우고 동쪽으로 러시아와 맞서 싸웠다. 당시 연합군은 압도적인 병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독일 본토 내로 들어갈 수 없었다. 바로 참호와 철조망, 그리고 기관총 때문이었다. 참호 속에 적 병사들이 숨어있으면 마땅히 공격할 수단이 없었으며 적 참호를 돌파하려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 병사들을 일제히 돌격시켜야 했다. 참호를 지키는 입장에서는 기관총 몇 대만 설치하면 맨 땅으로 뛰어오는 적 병사 다수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여기에 참호 앞에 철조망까지 설치해두면 적 병사들은 철조망을 넘느라 진격 속도가 더 떨어졌다. 이렇다 보니 수백 미터를 진격하기 위해 수천 명 이상의 병사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흔했다. 물론 참호를 돌파할 뾰족한 방법이 없던 것은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연합군과 독일은 서로 전선에 참호만 길게 파고 상대편이 진격해오기를 기다리는 ‘참호전’을 벌이게 된다.
이 방법을 타개할 방법으로 각 군은 적 참호까지 최대한 빨리 도달하기 위해 자동차를 써볼 생각도 했지만 일반 도로도 아니고 진흙탕과 포탄 구덩이가 곳곳에 널려 있는 전선에서 자동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하거나 바퀴가 빠져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때 몇몇 개발자들은 농업용 트랙터를 위해 개발된 무한궤도를 사용하는 군용 차량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무한궤도는 진흙탕에서도 쉽게 바퀴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의 공병장교 스위튼(Ernest Switon)은 이 아이디어를 좀 더 발전시켜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차량에 장갑판을 둘러 적의 기관총 공격을 막고, 적 참호진지 근처까지 다가가서 직접 적 기관총 진지에 총격·포격을 가하여 참호를 돌파하는 차량을 개발하고자 했다. 영국 육군은 처음에 몇 가지 시제품을 만들었으나 기술적 어려움 등으로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결국 이 아이디어는 폐기될 상황에 놓였다. 이때 당시 해군성(지금의 국방부와 비슷한 조직이나 당시에는 해군, 육군성이 별도로 존재) 장관인 윈스턴 처칠(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수상이 됨)은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육상전함’이라는 콘셉트로 계속 발전시키도록 후원했다.
이때 영국군은 자신들의 비밀무기의 정체를 적 스파이로부터 숨기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러시아군에게 물을 실어 나르는 공병차량’이라고 발표했다. 처음에는 ‘물 운반차’라는 뜻의 Water Carrier라고 불렸는데(Water Carrier 약자는 W.C, 즉 수세식 화장실이 됨) 한편으로 윈스턴 처칠의 약자도 되어 오히려 의도가 들통날 수 있다고 여겨 곧 ‘물탱크’라는 뜻의 Water Tank로 고쳐졌다. 완성된 최초의 전차 Mk.1(마크 1)은 당연히 물탱크 따위는 달려있지 않았지만 이때의 별명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영어 단어 ‘탱크(tank)’는 액체를 담는 통 이외에 전차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전차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땅 위를 기어가는 이동형 벙커라는 개념에 가까웠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러서는 아군의 선봉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중갑기병대에 가까워졌다. 전쟁 양상이 빠른 속도로 적의 약점을 파고들어 적 후방을 끊어버리는 기동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무전기의 발전으로 전차끼리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서 전차가 대규모로 집단 운용되기 시작했다. 전차가 지상군의 선봉에 서다 보니 아군 전차와 적 전차가 전선 한가운데서 만나는 것이 흔해졌는데, 결과적으로 전차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적 전차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를 용도에 따라 작고 빠른 경(輕)전차, 모든 면에서 가장 균형이 잡힌 중(中)전차, 느리지만 강력한 중(重)전차로 나누거나 보병을 따라 느린 속도로 진격하며 보병을 지원하는 보병전차와 빠르게 움직이며 적을 공격하는 순항전차로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아무리 두터운 장갑을 둘러도 다양한 대전차 무기 앞에 전차는 파괴되기 마련이었다. 장갑을 적당히 두르는 대신 빠른 속력으로 움직이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장갑을 많이 두른 무겁고 느린 중(重)전차가 사라졌다. 또 빠르게 움직이며 정찰을 하는 임무는 장갑차가 더 잘 수행하므로 경전차 역시 사라졌다. 결국 각 군대는 여러 종류의 전차를 개발하는 대신 과거 중전차에 가까운 개념으로 공격력과 방어력, 그리고 기동력을 고루 갖춘 한 종류의 전차만 개발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대의 전차를 주력전차, 즉 MBT(Main Battle Tank)라 부른다.
전차를 특징짓는 형태 중 하나는 포탑에 달려있는 기다란 주포다. 현대의 전차는 보통 120~125mm 구경(포 구멍의 내부 지름) 주포를 사용한다. 이 전차는 자이로센서 등을 이용해 아무리 전차가 움직여도 제자리를 유지하도록 되어 있으며, 덕분에 움직이는 동안에도 최소한 주포는 흔들림 없이 적을 조준할 수 있다.
보통 1980년대 이전까지 개발된 전차용 주포는 내부에 나선형 홈인 강선이 파여 있으며, 이것으로 포탄에 빠른 회전을 걸어주어 포탄 머리 부분이 제멋대로 돌아가지 않고 똑바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는 팽이가 회전하기 시작하면 쓰러지지 않고 똑바로 자세를 취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높은 관통력을 얻기 위해 날개안정분리철갑탄(APDSFS, Armor Piercing Fin Stabilized Discarding Sabot)이라는 긴 이름의 포탄을 주력으로 사용하면서 강선이 없는 포가 유행한다. 강선이 있는 것은 강선포, 강선이 없는 포는 활강포(Smooth Bore)라 부른다. 활강포는 상대적으로 강선포에 비해 측풍에 약하지만 현대의 전차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다 보니 2, 3km 이내에서는 강선포 수준으로 정확히 표적을 맞출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상 멀리 떨어진 적은 어차피 지형에 가리거나 전차의 센서 탐지거리의 한계 때문에 전차가 공격하기 어려우므로 큰 문제가 안 된다.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은 쉽게 말해 전차 주포에서 쏘는 금속화살이다. 의외로 ‘대포’라는 물건이 처음 역사에서 등장했을 때도 대포에서 쏘아 보내는 것은 쇳덩이나 돌덩이가 아니라 화살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철갑탄’이란 갑옷(갑옷 갑甲)을 뚫는(뚫을 철徹)탄이란 뜻이다. 이는 보통 내부에 별도의 폭약은 들어있지 않고, 금속으로만 되어있는 포탄이다. 금속제 포탄의 관통력을 높이려면 일단 포탄이 매우 빠른 속도로 날면서도 무거워야 한다. 빠른 속도로 나가게 만드는 것은 화약(추진장약)이 하는 일이지만, 포탄 무게는 자체의 재질이 같다면 나머지는 부피에 달린 일이다. 그런데 관통력을 높이려면 포탄 모양이 바늘처럼 가늘수록 유리하다. 두꺼운 송곳과 가는 송곳 중 어느 것이 물건을 잘 뚫는지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부피는 유지한 채 가늘게 만들려면 결국 포탄을 앞뒤로 길게 늘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앞뒤로 길고 몸통이 가는 물체는 회전을 걸어도 안정화가 쉽지 않다. 키가 높은 팽이가 더 잘 쓰러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경우에는 포탄에 화살처럼 날개를 달아서 안정화해야 하는데 이게 날개안정분리철갑탄(Armor Piercing Fin Stabilized Discarding Sabot)의 ‘날개안정’이다. 포탄이 빠르게 나가려면 포 내부에서 화약의 힘을 최대한 잘 받아야 하고, 그 힘을 잘 받으려면 화약 힘을 받는 면적이 넓을수록 유리하다. 철갑탄처럼 가는 형태의 포탄은 전차포 내부에서는 화약의 힘을 받아 포탄을 가속시켜주다가, 포를 벗어나는 순간 포탄에서 벗겨지는 분리형 송탄통(Discarding Sabot)이 필요하다. 이게 날개안정분리철갑탄에 있어 ‘분리’의 의미다. 일선에서는 이 긴 이름을 다 부르기 어려우므로 보통 ‘날탄’이라 줄여 부른다.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은 그냥 쇳덩어리이므로 추가로 폭발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보병들 사이에 쏘아도 폭발 없이 탄만 땅에 박히고 끝난다. 건물에다 쏘아도 건물에 구멍을 내고 뚫고 들어가지만 내부에서 터지거나 하지 않으므로 건물 공간 내부가 넓다면 적이 별 피해를 입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은 전차 입장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포탄이다.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은 엄청난 고속으로 전차 장갑에 부딪히며 뚫고 들어갈 때 대량의 파편을 만드는데, 여기에는 포탄 자기 자신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도 있고 전차 장갑재 뒤쪽이 떨어져 나오면서 만드는 파편도 있다. 이 파편들이 약 60도 범위 내에서 마치 산탄총의 총탄이나 클레이모어의 쇠구슬들처럼 전차 내부로 쏟아진다. 전차 내부는 승무원과 주요 장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여기에 순간적으로 높은 온도로 달궈진 고속의 금속 파편들이 쏟아지면 그 일대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전차에서 쏘는 포탄으로 대전차고폭탄(HEAT: High Explosive Anti-Tank)이라는 것도 있다. 고폭탄이란 고성능 폭약이란 뜻으로 일반적인 군용 폭약을 말하며 이것을 사용하는 포탄으로 대전차 임무에 맞춰 만들었다는 뜻이다. 보통 일선부대에서는 ‘대탄’이라 줄여 부른다. 대전차고폭탄은 폭약 앞쪽 모양이 깔때기처럼 파여있는데, 이렇게 특정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하여 이러한 폭약을 성형작약(Shaped Charge)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패인 폭약을 뒤쪽에서부터 기폭시키면 충격파가 앞쪽으로 전달되면서 한 점에 모여 결국 전체 폭발력 중 상당 부분이 앞으로 집중된다. 이렇게 집중된 폭발력은 마치 물을 이용하는 수압 절단기가 금속을 자르듯, 전차 장갑을 뚫어버리게 된다(종종 폭발 시 발생하는 열로 장갑을 녹이는 것으로 오해 받는 경우가 있지만 수 십분의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장갑이 열에 의해 녹지는 않는다). 특히 대전차고폭탄은 관통력을 높이기 위해 화약의 깔때기 부분 안쪽에는 라이너라 부르는 금속제 껍질을 덧씌운다. 라이너로는 보통 적당히 무거우면서도 폭발 시 미세하게 붕괴되는 구리합금을 사용한다. 폭발시 미세한 분말이 된 금속들은 화약의 힘에 의해 제트 형태로 쏘아져 보내어 전체적인 관통력을 높이며 이를 금속제트(Metal Jet)라 부른다.
한편 대전차고폭탄이 최적의 관통력을 내려면 장갑에 완전히 밀착하면 안 되고 오히려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대전차 고폭탄 앞쪽은 비어있으며, 아예 길다란 봉을 덧대어 이 부분이 화약보다 먼저 닿아 화약을 터트리는 전기신호를 만들도록 되어있다. 다만 현대의 전차는 복합장갑과 반응장갑 등을 이용해 대전차고폭탄에 대한 방어력을 매우 높인 상태다 보니 이름과 달리 대전차용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대신 폭발력이 앞으로 집중된다고는 해도 여전히 사방으로도 파편을 흩뿌리므로 장갑차나 보병, 벙커 등을 공격하는 다목적으로 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아예 다목적성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다목적 대전차 고폭탄(HEAT-MP(Multi Purpose))이 전차에 주로 탑재된다.
전차의 포탄은 그 무게가 십 수 kg에 달하는데 아직도 많은 수의 전차는 이것을 사람이 직접 장전한다. 좁은 전차 내부에서 험지를 달리느라 흔들리는 와중에도 장전수가 포탄을 들어올려 장전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계장치는 고장이 나기 쉽다 보니 자동으로 전차포탄을 장전하는 장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아직도 전세계 전차 수를 놓고 보자면 사람이 직접 장전하는 방식이 절반은 넘는다. 전차포탄은 보통 장전수가 바로 꺼낼 수 있는 곳, 혹은 자동장전장치 일종의 탄창에 보관되는 탄약이 십 몇 발 정도 있으며, 나머지 포탄은 다른 곳에 보관된다. 게임이나 영화와 달리 실전상황에서 전차가 한 번의 전투에 포탄을 십 몇 발 이상 쏘는 경우는 잘 없기 때문이다. 전투가 끝나면 전차병들은 전차 깊숙이 보관된 포탄을 다시 장전수 자리 근처, 혹은 자동장전장치 내부로 옮긴다.
전차의 주력 무장은 전차포지만 부무장으로는 다수의 기관총을 사용한다. 사실 다수의 보병을 상대한다면 장전이 오래 걸리는 주포보다는 이런 기관총이 더 효과적이다. 옛날 전차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벙커 개념으로 기관총을 사방에 달기도 했지만, 현재는 주포와 연동되는 공축기관총 1개와 전차장, 장전수가 쓸 수 있는 기관총이 포탑 위에 1, 2개 달린다. 공축기관총은 주포를 조작하는 포수가 주포와 함께 직접 조작하며 주포용 조준장치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정밀사격이 가능하다. 전차장, 장전수용 기관총은 보통 여러 방향으로 손쉽게 돌릴 수 있으며, 특히 전차장용 기관총은 대부분 12.7mm급 이상 대구경 기관총을 사용하는데 이는 순간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나타난 적 헬기를 공격하기 위한 최후의 대공 공격 수단이다. 다만 포탑 위의 기관총은 승무원이 차체 몸 밖으로 내밀고 쏴야 하므로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안전하게 차체 내에서 원격조작으로 움직이는 기관총도 등장하고 있다.
2월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