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을 내달리는 60톤의 강철 괴수, 전차 이야기(下) - THE SSEN LIG

디펜스 Show

전장을 내달리는 60톤의 강철 괴수

전차 이야기(下)

글. 기계연구센터. Project 2팀/이승진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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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 지상전의 왕자로 군림하고 있는 전차의 공격력, 포탄 및 부무장에 대해 살펴봤다. 이번 호에서는 전차 방어력의 핵심인 장갑의 배분과 종류, 기동력, 첨단 센서 등에 대해 살펴보고, 여전히 지상군의 주력으로 자리를 지킬 전차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해본다.

전차의 방어력, 적의 공격 속에서 살아 남아라

장갑의 배분

전차가 빠르게 움직이며 강력한 화력으로 적을 제압한다 해도 적의 일반적인 공격 한 두 번에 쉽게 파괴되어서는 아군 공격부대의 선봉에 설 수 없다. 그래서 전차는 두터운 장갑을 둘러야 한다. 전차 장갑은 기본적으로 강철로 만든다. 초기 전차는 적 기관총탄을 막는 수준으로 1cm 정도 철판을 사용했지만 곧 전차가 전투에 본격적으로 쓰이면서 다양한 전차 공격수단도 함께 등장하여 전차의 장갑은 날이 갈수록 두터워졌고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전차 장갑 두께가 10cm를 넘게 되었다. 이렇게 두꺼운 강철판은 A4용지만한 크기여도 수 십 kg에 달하므로 만약 이러한 두께의 철판을 전차 사방에 둘렀다가는 너무 무거워져서 움직이기조차 버거워진다. 그래서 전차는 주로 가장 적을 많이 마주하는 부분, 즉 전차 포탑 정면을 가장 두껍게 설계하고 다른 부분은 적당히 얇은 장갑을 둘러 기관총탄이나 주변에 떨어진 적 포탄의 파편을 막는 수준으로 설계된다.

경사장갑

(똑같은 100mm 두께의 장갑판이라도 이를 50도 기울인 상태면 정면에서 날아온 포탄은 155mm 두께의 장갑을 뚫어야 한다.)

전차의 방어력을 앞부분에 집중한다고 해도 마냥 두꺼운 강철판만으로 적 포탄을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경사장갑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장갑판을 일부러 기울여 붙이면 포탄 입장에서는 뚫고 들어가야 하는 거리가 더 늘어나므로 비슷한 무게의 장갑으로도 더 좋은 방어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날개안정식분리철갑탄은 전차 장갑에 닿는 순간 경로가 장갑의 기울어진 각도와 비슷하게 기울어져 뚫고 들어가는 효과가 있어 이 경사효과가 줄어들게 된다.

공간장갑

공간장갑이라는 것도 등장하는데 이것은 주로 대전차고폭탄을 막는데 효과적이다. 대전차고폭탄이 최고의 관통효과를 내려면 화약과 장갑재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일부러 장갑 사이에 공간을 두면 원래 예정보다 더 앞에서 대전차고폭탄이 터져 관통효과가 줄어든다. 사실 전차 포탑 옆에 붙어있는 공구 상자통이나 전차병들이 짐을 바깥에 일부러 주렁주렁 매달아 두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노린 것이다.

반응장갑

폭발반응장갑은 적의 대전차고폭탄을 더욱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개발된 장갑이다. 이것은 전차의 주장갑 위에 타일 형태의 폭약을 넣어둔 금속상자이다. 대전차고폭탄이 여기에 닿아 터지면 폭발반응장갑 내부의 폭약도 같이 터지며 이때 장갑재 앞부분이 대전차고폭탄 방향으로 튕겨져 나간다. 이 장갑재는 대전차고폭탄이 만드는 금속제트를 훑으며 지나가 원래보다 더 강한 저항을 일으키며, 장갑재의 폭발력 등에 의해 금속제트 중간 중간이 끊겨 대전차고폭탄의 관통력이 줄어든다. 하지만 전차 주변에 방어용이라고는 해도 화약을 두르는 것은 역시 위험한 일이고, 특히 전차 주변에 있는 아군 보병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최근에는 비활성반응장갑이란 것도 개발 중이다. 이것은 고온?고압의 금속제트에 닿으면 폭발하지는 않지만 순간적으로 크게 부풀어 오르는 고무 같은 것을 넣어둔 반응장갑으로, 효과는 폭발형보다 떨어지지만 더 안전하다.

(폭발 반응장갑에 대한 특허 그림 중 일부. 검은색 진한 선이 금속제트이며 폭발반응장갑의 앞쪽 장갑판이 튀어 오르면서 금속제트를 방해하고 있다.)
(실제 폭발반응장갑의 실험장면. 금속제트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 중 폭발반응장갑을 만나서 중간중간 끊겨버렸다.)                                                          (타일 형태의 폭발반응장갑을 두른 T-72 전차)

복합장갑

최신형 전차의 주력 장갑재는 복합장갑이다. 이것은 두 장의 강철장갑 사이에 여러 가지 물질을 채워둔 것으로 그 상세한 내용은 기밀사항이지만 대체로 세라믹 계열의 타일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라믹은 일종의 도자기 같은 물질로 표면이 매우 단단하지만(경도가 높음) 큰 충격을 받으면 쉽게 깨져버린다. 하지만 표면은 고속으로 뚫고 들어오려는 날개안정식분리철갑탄 앞부분을 뭉개버리거나 망가트리는데 효과가 있으며, 또 깨져버린 세라믹 조각들은 뚫고 들어오는 것을 방해한다. 대전차고폭탄이 만드는 금속제트도 이 깨져버린 세라믹 조각들의 방해를 받아 관통력이 크게 감소된다. 하지만 복합장갑은 제작비가 비싸고, 두께도 상당하기 때문에 전차의 모든 곳에 사용하긴 어렵다. 주로 정면 장갑에만 사용하며, 측면과 후면장갑은 적 보병이 매복해 있다가 쏠 우려가 있는 대전차 로켓(공격원리는 전차의 대전차고폭탄과 같다)을 막기 위해 공간장갑을 사용하거나 여기에 반응장갑을 덧붙인다. 보통 전차의 장갑은 RHA(균질압연강판) 몇 mm라고 표시하는데, 이것은 실제 장갑재 두께가 그 정도라는 소리가 아니라 RHA라는 철판 몇 mm와 같은 수준의 방어력을 뜻한다. 보통 전차의 전면 복합장갑의 경우,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은 600mm급, 대전차고폭탄은 700mm급으로 방어해낼 수 있다.

(두 장의 강철재 장갑판 사이에 세라믹타일이 들어간 복합장갑)

기타 생존성 증가 수단

아무리 두터운 장갑을 두른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그 장갑은 뚫리기 마련이다. 이때 내부 피해의 주된 원인은 바로 파편이다. 파편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장갑 안쪽 벽면에는 파편방지 라이너라는 것을 붙이는데, 주로 방탄복에 주로 쓰이는 케블라 같은 섬유처럼 생긴 질긴 재질을 쓴다. 전차 내부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에는 이를 자동으로 감지하고 즉시 소화기를 작동하는 자동소화장치도 달려있다. 자동소화기도 어찌하지 못할 불이 나서 전차 포탄에 불이 옮겨 붙을 경우에는 그 화염이 하다못해 전차병을 덮치지 않게 일부러 전차 포탑 위 덮개 일부를 약하게 결합하기도 한다. 그러면 화염 때문에 높아진 압력으로 이 부분이 떨어져나가고, 화염도 이쪽으로 빠져나가 내부 피해가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최신형 전차들은 양압장치가 들어있는데 이것은 전차 내부의 압력을 주변보다 약간 높게 만들어 전차가 완전 밀폐된 상태가 아니더라도 외부로부터 공기가 못 들어오도록 하는 장치다. 양압장치 때문에 화학탄 같은 화생방 무기를 써도 전차 승무원은 안전하다. 더불어 이 장치는 부수적으로 에어컨 역할도 겸할 수 있어서 무더운 여름에 전차 승무원의 피로를 덜어줘 전투를 더 오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전차가 멀쩡해도 그것을 조작해야 하는 승무원이 지쳐버리면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없다.
전차를 최대한 작게 만드는 것 또한 생존성을 높이는 비결이다. 작은 전차는 그 만큼 적의 눈을 피해 숨기 좋으며, 공격 받을 때도 적 포탄에 명중 당할 확률이 줄어든다. 하지만 작은 전차는 두터운 장갑을 두르기 어려워지므로 결국 각 나라의 지형이나 전술에 따라 어느 쪽을 우선할 지 결정해야 한다.

전차의 기동력, 적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라

무한궤도

전차 외형에서 눈에 띄는 부분 중 하나가 무한궤도다. 무한궤도는 ‘Continuous Track’을 번역한 말로 캐터필러라고도 부른다. 무한궤도는 전차 이외에도 민간용 공사차량이나 농기계에도 종종 쓰이는데 차체가 무거워도 진흙이나 구덩이에 쉽게 바퀴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흙에 바퀴가 빠지는 것은 자체 무게 보다 땅에 작용하는 압력, 즉 접지압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똑같은 사람이 개펄에 있다고 했을 때, 두 발로 서 있으면 개펄에 발이 푹푹 빠져버리지만 만약 넓은 널빤지를 발 밑에 깔면 빠지지 않는다. 무게가 넓은 면적으로 분산되어 압력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보통 대형 트럭도 바퀴를 여러 개 두어 접지압을 낮추지만 캐터필러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아예 바퀴 사이사이 공간에도 널빤지를 깔아 접지압을 더 낮추었다고 보면 된다. 현대의 전차는 무게가 50~60톤 가까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험한 땅에서도 바퀴가 빠지지 않고 오히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것도 이 무한궤도 덕분이다.
전차용 무한궤도는 보통 튼튼한 금속제 부품 여러 개를 엮어서 만들기 때문에 무게가 대단히 무겁고 다루기도 힘들다. 만약 무한궤도를 교체해야 한다거나, 기동 중 벗겨지기라도 하면 병사들 여럿이 달려들어야 겨우 다시 전차에 끼울 수 있다. 무한궤도를 사용하는 전차는 방향 전환도 복잡한데 진행 방향을 바꾸려면 좌·우 무한궤도가 다른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만약 왼쪽 궤도의 속도를 늦추면 왼쪽 궤도를 축으로 전차 전체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양쪽 궤도의 움직임을 반대로 돌게 하면 차체가 제자리에서 회전한다. 이렇게 좌우 궤도가 다른 속도로 움직이려면 변속기도 좌우가 별도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차량보다 변속기 또한 매우 복잡해진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몇 십 톤에 달하는 전차가 전쟁터에서 민첩하게 움직이려면 현재로서는 무한궤도만한 것이 없다.

(무한궤도 차량이 U턴 하는 모습을 시뮬레이션한 영상. 방향을 바꿀 때 좌우 궤도 회전속도가 다르다.)

보통 무한궤도 안에는 여러 바퀴들이 전차를 받치고 있는데, 이 바퀴들을 보기륜이라 부르며 그냥 헛도는 바퀴일 뿐 별도로 힘이 전달되지는 않는다. 궤도를 실제 돌리는 힘을 전달하는 바퀴는 기동륜이라 하며, 마치 자전거 체인을 돌리는 톱니바퀴처럼 생겼다. 이 톱니들이 무한궤도와 맞물려 미끄러지지 않고 궤도를 돌린다.

(M1 에이브람스 탱크의 측면 모습. 톱니모양의 바퀴가 기동륜이다.)

엔진과 변속기

현대의 전차는 엔진과 변속기를 하나로 묶어 ‘파워팩’이라는 형태로 만든다. 전차의 엔진 및 변속기가 파워팩 형태가 됨에 따라 상황이 급박한 야전에서 전차의 구동계통을 수리하기 훨씬 쉬워졌다. 일단 구동계통이 고장 나면 파워팩을 통째로 들어내어 새 것으로 교체하고, 고장 난 파워팩은 후방의 공장 등으로 보내서 세심하게 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전차용 파워팩에 들어가는 변속기는 보통 전방으로 4~6단, 후방으로 2단 정도인 경우가 많다. 전차는 전투에서 최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빨리 가속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으면 적에게 조준 당하기 쉬우므로 매복해 있다가 들켰다거나, 적을 공격하기 위해 잠깐 정차했다면 재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 몇 십 톤의 전차를 순간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현대 전차용 엔진은 대부분 1,000에서 1,500마력 엔진을 사용한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전차는 주로 가솔린 엔진을 운용했다. 이 때문에 화재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화염병이란 무기도 별다른 전차공격 수단이 없는 병사들이 전차를 공격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시초였다. 그러나 디젤기술의 발전 덕에 현재는 화재에 훨씬 강하고,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는 디젤엔진이 주류를 이룬다. 미국과 러시아 등 일부 국가는 디젤엔진만으로는 만족할 만한 엔진 출력을 낼 수 없자 가스터빈 엔진을 전차용으로 사용하였다. 가스터빈 엔진은 일종의 소형 제트엔진이다. 다만 비행기에 쓰는 제트엔진은 제트를 뒤로 분사하여 그 힘으로 앞으로 나가지만 가스터빈 엔진은 그 제트의 힘으로 터빈이라 부르는 일종의 풍차, 또는 풍력발전기 같은 것을 돌려 구동력을 얻는다. 이것은 덩치와 무게에 비해 큰 힘을 낼 수 있지만 공기를 빨아들이는 압축기가 고속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먼지나 이물질에 취약하다. 복잡한 필터와 이물질 제거 장치가 필요하고, 연비가 디젤엔진보다 더 나쁘다는 단점이 있다.

현수장치

전차가 무한궤도와 강력한 엔진을 이용해서 험지를 돌파한다고 하더라도 그 와중에 차체가 마구 흔들리면 내부 승무원은 쉽게 지치며 적을 발견하고 조준하기도 어려워진다. 전차는 매우 험한 지형에서도 차체의 흔들림이 거의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차의 현수장치(Suspension, 흔히 자동차정비소에서 ‘쇼바’라고 부르는 그것) 역시 뛰어난 기동성을 위한 중요한 요소다. 현대의 전차는 토션바 방식과 유기압 방식, 이렇게 두 가지를 사용한다. 토션바 방식은 긴 쇠막대기가 비틀리는 힘을 받으면 스프링처럼 되돌아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일반 스프링을 사용하는 방식에 비해 훨씬 큰 힘을 버티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토션바가 전차 차체 좌우로 가로지르기 때문에 공간 활용이 좋지 않으며, 정비 소요는 별로 없지만 만에 하나 정비할 일이 생기면 차체 내부의 긴 금속봉을 꺼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롭다. 유기압 방식은 밀폐된 실린더 안에 기름과 기체(보통 질소)를 채워 넣은 것으로 만약 피스톤이 눌리면 유압과 기체에 의해 내부 압력이 높아지면서 다시 피스톤을 제 위치로 되돌리는 힘을 만든다. 마치 유체?기체로 된 스프링 같은 것. 이 방식은 차체 내부에 넣을 필요가 없으므로 공간활용이 좋다. 특히 피스톤 내의 공기 양을 조절하면 일부러 한쪽 현가장치만 주저앉게 만들어 전차 차체를 한쪽으로 기울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경사가 많은 산악지형에서 경사 위 혹은 아래에 있는 적을 공격하기 한결 수월해진다.

전차의 센서, 강철 몸체 속에 숨어있는 정교한 장치들

조준장치

전차는 튼튼하고 거친 느낌이 강하지만 내부에는 매우 섬세한 전자장비들이 많이 들어간다. 대표적인 전자장비로 조준장치가 있다. 현대의 전차는 사수가 표적을 조준하면 그 지점 그대로 포구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포탄이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정도, 옆바람의 세기, 표적과의 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포의 조준점을 미세하게 보정해준다. 이것을 위해 전차에는 기본적으로 탄도계산 컴퓨터가 들어가며, 표적과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레이저 거리측정기도 달린다. 포수가 표적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포탑 윗부분에는 줌 기능이 있는 일종의 CCTV가 달려있어 사수는 전차 포탑 안에서도 표적을 정확히 볼 수 있다. 특히 최신형 전차는 일반 CCTV용 카메라 이외에 적외선 카메라가 함께 달려 있어 악천후나 야간에도 표적을 탐지할 수 있다. 만약 이 부분이 파괴될 경우에 대비해 일반 렌즈를 사용하는 기계식 조준장치도 달려있다. 그리고 이것과 거의 비슷한 조준장치가 전차장 자리에도 달려있다. 전차장용 조준장치는 사수의 것과 달리 360도 사방으로 돌아가며, 줌 기능은 약한 대신 한번에 주변을 더 넓게 관찰할 수 있다. 전차장은 이것을 이용해 사수가 표적을 조준하는 중에도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 다른 적은 없는지 살핀다. 만약 지금 조준 중인 적보다 더 위급한 표적(이를테면 나를 노리고 있는 적)을 발견하면 강제로 포탑을 그쪽으로 돌려 사수가 그 표적을 먼저 조준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을 표적을 찾아내고 쫓는 사냥꾼과 표적을 실제로 처치하는 킬러에 비유하여 헌터-킬러(Hunter Killer)라고 부른다.

(전차의 적외선 조준기 영상)

(르끌레르 전차의 모습. 사진상 주포 왼쪽의 사각형 부분이 전방으로 고정된 사수용 조준장치, 오른쪽에 위로 튀어나온 것이 360도 회전이 가능한 전차장용 조준장치다.)

위협 경보센서

전차에는 공격을 위한 센서 이외에 방어를 위한 센서도 늘고 있는 추세다. 최신형 전차에는 레이저 경보기가 달려있으며 만약 주변에서 자신의 전차를 레이저 거리측정기로 조준하면 그 위치를 즉시 승무원에게 알려준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전차에 소형 레이더가 탑재되기도 한다. 이 레이더는 전차를 향해 고속으로 날아오는 물체, 즉 대전차미사일이나 로켓탄을 감지하여 전차 승무원에게 미리 경고한다. 특히 최신 전차들은 단순 경고뿐만 아니라 그 방향에 자동으로 연막탄을 터트려 적의 시야를 가리거나 아예 대응탄을 쏴서 적 로켓탄이나 미사일을 요격해버리는 능동방어체계(APS)도 탑재하고 있다.

통신장비

전차는 지상전에서 핵심적인 무기지만 절대로 혼자 다니지 않는다. 1, 2대 동떨어진 전차는 적의 매복공격에 걸려 허무하게 파괴되기 쉽다. 이 때문에 모든 전차에는 무전기가 기본적으로 탑재된다. 하지만 복잡한 전투 중에 서로 일일이 자신의 상황을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최신 전차에는 상부의 명령을 문자와 도형으로 전달 받고, 그 내용은 모니터의 전자지도 상에 표시되는 한편 그것을 통해 아군의 배치와 보고된 적군의 위치 등이 한 번에 표시되는 장치들이 설치되고 있다. 이 복잡한 정보의 전달과 분배는 사람이 일일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절반 정도 컴퓨터에 의해 자동화 되며, 이를 C4I(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Intelligence, 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정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게임에서 작은 지도에 아군과 적군의 위치가 표시되는 것이 현실에 구현된 것쯤 된다.

전차의 현재와 미래

전차는 무적이 아니다. 여러 센서를 갖추고 있음에도 기본적으로 시야가 좁은 편이어서 매복한 보병을 잘 찾지 못한다. 그래서 전차부대에는 많건 적건 보병부대가 항상 따라다니며 매복 보병을 미리 찾아내야 한다. 또 전폭기와 공격헬기, 무인기는 각종 대전차미사일을 탑재하고 5~10km 이상 먼 거리에서 전차를 저격하기에 전차부대는 항상 대공미사일을 갖춘 방공부대와 함께 다니거나, 아군 전투기의 공중 엄호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뉴스에서는 종종 ‘이제 전차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적잖은 전차들이 중동군이 발사한 대전차미사일에 격파되자 이번에도 전차의 종말이 왔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으나 분석결과 전차를 가장 많이 파괴한 것은 같은 전차였다. 전차부대가 보병부대와 함께 다니면 적 보병들 입장에서는 전차에 대한 매복 공격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90년대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의 수많은 전차가 연합군의 전폭기와 공격헬기에 맥없이 파괴됨에 따라 이제 전차는 쓸모 없어졌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정작 연합군이 이라크군을 몰아내기 위해 지상군을 투입할 때 그 지상군의 선봉에 선 것은 다름 아닌 전차부대였다. 무인공격기가 등장해서 이번에야말로 전차의 시대에 종말이 왔다고 하지만 정작 그 무인공격기를 가장 많이 운용하고 있는 미군이 지금도 전차 개량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대전차미사일은 한 대당 수억 원에 달할 정도로 비쌀뿐더러, 생각보다 발사에 많은 조준시간이 필요하다. 매복에 실패할 경우 보병들로서는 두터운 장갑도 없고 빠르게 도망칠 수단이 없어 쉽게 무력화 된다. 전폭기와 공격헬기, 무인기는 역시 전차보다 훨씬 비싼 공격수단이기에 이것들만 이용해 모든 지상군을 파괴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게다가 날씨의 제약도 심하고, 연료의 제약 때문에 제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아군을 지원해주기 어렵다. 하지만 전차는 그 자체는 물론 몇 십억 원 정도로 비싸도 공격에 사용하는 일회용 전차 포탄은 수 억 원씩 들진 않는다. 또 대전차미사일은 수동적인 매복공격 밖에 할 수 없으나 전차부대는 두터운 장갑과 빠른 기동성을 이용해 전선을 능동적으로 돌파할 수 있으며, 대전차미사일의 매복 공격은 아군 보병부대와의 연계로 극복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전차 역시 지상장비이므로 지상군과 함께 보조를 맞추며 진격하거나, 제자리에 머물면서 방어임무를 하는 등 공중을 날아다니는 장비보다 지상부대와 함께 다니기 훨씬 유리하다. 어찌 보면 다양한 전차 공격수단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전차가 아군에게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향후에도 전차는 여전히 지상군의 주력으로 자리를 지킬 전망이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T-90 탱크)